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리스 영화 (문단 편집) === [[1970년대]] ~ [[1990년대]] === [[1970년대]] 군부 독재 이후 그리스 영화는 '수치상으로는' 황금기보다 더 뛰어난 시절을 맞았다. 군부 정권은 자신들의 선전을 위해 [[1971년]] Hellenic film commission(그리스 영화 센터)를 설립하고 대대적인 영화 제작 지원을 하였다. 그러나 [[전간기]]와 황금기 시절 그리스 영화를 주도했던 [[자유주의]] 영화 풍조는 철저히 탄압하여 질적으로는 엄청나게 악화되었다. [[예술영화]]는 거의 나오지도 않고 [[상업영화]]들도 [[독재]] 선전용 영화들로 떡칠되었다. [[그리스]] 영화인들은 이 시기를 [[흑역사]]로 여긴다. [[1974년]] 군부정권이 물러나고 민주화가 되었는데... 하필이면 [[컬러]] [[TV]]가 도입되며 그리스 영화판은 폭삭 주저 앉는다. TV가 들어오기 전에 [[일본 영화]] 시장에서 1인당 연간 영화 관람 횟수가 14.3회에서 TV 도입 이후 1인당 영화 관람 횟수가 1명 정도까지 폭삭 주저 앉았는데, 그리스 영화판은 일본 영화판보다 더 극적이었다. 그리스 영화는 컬러TV 도입 이전 영화 관람 연간 횟수가 15회에 달할 정도로 많았으나 '''[[1980년대]]가 되면 연간 1회 아래로 떨어진다.''' 수치상으로 1/16 미만으로 줄었다. 그런데도 불구하고 [[그리스]]에서 일부 만들어진 [[영화]]들이 [[미국]] [[아카데미 시상식]] [[아카데미 국제영화상|외국어영화상]]을 받고, [[미국 영화]]와 [[영국 영화]] 시장에서 히트하기도 했다. 일단 [[테오 앙겔로풀로스]]가 롱테이크 위주로 자국 역사를 회고하는 유랑극단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열어젖히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부상했다. 특히 앙겔로풀로스는 그리스 영화에 대한 선입견도 굳혀버려서, [[요르고스 란티모스]]가 등장하기 이전의 그리스 영화는 성찰적이고 느린 영화들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만들었다. 해외에서는 망명했던 코스타 가브라스가 정치적인 영화로 히트를 기록하면서 헐리우드 진출에 성공해 [[멜리나 메르쿠리]]나 [[마이클 카코야니스]] 다음으로 국제적인 그리스 영화감독으로 자리잡았다. [[1990년대]]부터 [[그리스]]의 [[유럽연합]] 가입이 가시화되고 이 때쯤 되면 군부 독재 청산도 이뤄지면서 Hellenic film commission(그리스 영화 센터)도 정상화되고 그리스 영화 시스템도 정상화되었다. 이 때부터 [[멀티플렉스]]가 들어오며 조금씩 증가세로 돌아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